번역가는 문화의 첨병입니다. 세계의 꽃밭에서 가장 아름다운 씨앗들을 가져와 우리 문화를 살찌우는 농사꾼들입니다. 바로 그것이 번역가로 살아가는 의미이며 보람입니다.
번역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직업입니다. 그러나 작업실에 홀로 앉아서도 최고의 작가들과 수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일터 같은,
때로는 싸움터 같은, 때로는 놀이터 같은 언어의 바다에서 우리는 날마다 “이 자리에 딱 맞는 그 말”을 찾아 나섭니다. 무수한 말들을 주웠다가 버리고, 또 주웠다가 버립니다.
번역은 정신감응입니다. 작가와 독자가 대화를 나누려 할 때 번역가는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줍니다. 우리가 꿈꾸는 책은 지은이와 옮긴이, 옮긴이와
읽는이, 그리고 읽는이와 지은이가 흐뭇하게 만날 수 있는 오붓한 공간입니다.
마음에 쏙 드는 원서를 처음 읽는 기쁨, 그 속의 빼어난 문장들을 사랑스러운 모국어로 바꿔가는
기쁨,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말들을 찾아내는 기쁨, 그리고
내 이름이 새겨진 새 책을 받아드는 기쁨, 그런 것들이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합니다.
지금 저는 뜻밖의 선물을 받고 놀라워합니다. 더구나 유영 교수님을 기리는 상이기에 더욱더
각별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분은 시인이며 교육자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서사시 일리어드, 오디세이, 신곡, 실락원 등을 주옥 같은 우리말로 옮긴 선배 번역가이기도 하셨습니다. 고인의
뜻을 이어 번역 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유족 여러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과분한 상을 받고 보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철없는 제자를 처음부터 믿어주셨던 조성규 교수님께, 그리고 번역가의
지뢰밭 같은 수상작 분노의
작가 살만 루슈디 선생님께 한없는 고마움을 전합니다. 문학동네 식구들의 노고에도 깊이 감사합니다. 나를 믿어주는 출판사, 내가 믿을 수 있는 출판사, 그리고 유능한 편집자를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는 번역가에게 크나큰 힘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정중히 고개를 숙입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유영학술재단의 부단한 발전을 기원하며, 아울러 유영번역상이 최고 권위의 번역상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합니다. 저에게 이 상은 당근인 동시에 채찍입니다.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약력
1964년 출생.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및 영문과를 거쳐 마이애미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악마의 시(살만
루슈디), 해상시계(데이바
소벨), 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원수들, 사랑 이야기(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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